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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1] 당신들이 바로 리빙랩 코디네이터입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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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곤 기자
  • 승인 2018.08.27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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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리빙랩 성과 나왔다

아닌 건 아니야… 할머니들의 반란

주위 비뚤어진 시선이 힘들었다

구성원 참여 끌어내기 가장 어려워

여자가 마을에 와서 설쳐?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리빙랩 코디네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성지은 연구위원(오른쪽부터 반 시계방향), 통영 당포마을 귀어인·마산YMCA 평생교육위원회 김정남 위원장, 경남대학교 지역사회혁신센터 정은희 센터장, 창원시 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활동가팀 김경년 팀장이 좌담회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지속가능한 리빙랩 모델

홀로 구축한 경남대

◇ 정은희 센터장 = 경남대에서 추진한 두 가지 행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사례와 변화를 말씀드리겠다.

대학 안에서의 변화는 대학 교수 등 구성원들이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개인 연구와 승진을 위한 실적 쌓기 등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나, 행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지역사회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가에 대한 인식전환이 교수들 사이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교수들의 인식이 바뀌니 그 영향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경남대 LINC+사업단에서 기존에 편성된 교과목 중에서 지역사회의 제반 문제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지역문제해결역량을 기르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교과목들을 지역사회연계교과목으로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 교과목은 현장으로 나가 다양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리빙랩 방식의 교과목으로 수업의 미션은 교수와 학생과 지역민과 민간단체가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처음 시도한 작년 2학기에 12개 교과목이 운영이 됐고, 2018학년도 1학기에는 22개 교과목으로 늘어났다. 2학기에는 23개 교과목으로 확대가 됐다.

어떻게 하면 리빙랩을 활용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고, 또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경남대학교만의 지속가능한 리빙랩 모델을 만들었다.

경남대학교만의 지속가능한 리빙랩 모델은 4가지 실천전략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전략은 상생과 협업을 위한 리빙랩 거버넌스 ‘함께’ 형성하기, 둘째 전략은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 ‘넓게’ 파악하기, 셋째 전략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구조를 ‘깊게’ 형성하기, 넷째 전략은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오래’ 지속가능할 수 있는 장치 마련하기이다.

행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첫 번째 사례는 원도심을 활용한 자유학기제프로그램 개발이이다. 이것은 김경년 팀장님의 창동 골목에서의 활동과 연계하여 진행된 것이다. 1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창동 원도심활성화 사업은 골목의 하드웨어를 잘 만들었지만 소프트웨어는 거의 없었다.

김경년 팀장님께서 홀로 고등학교에 찾아가 창동으로 소풍을 오라고 설득했고, 이삼백 명의 학생을 혼자 끌고 다니며 골목을 소개했다.

이때, 창원시상권활성화재단과 함께 대학의 교육 컨텐츠를 활용해 실제로 창동 골목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사범대에서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학과와 교수님을 모집했다. 교육학과,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국어교육과, 가정교육과, 체육교육과, 일어교육과 7개 학과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모였다.

창동이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소풍이나 체험활동을 온 학생들이 국어, 수학, 미술 등을 어떻게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학에 보면 거리재기가 있다. 보통 학교에선 공식을 적용해 답을 내는데 이 아이템을 실제로 창동 골목의 명소의 거리를 재 안내판에 적용했다.

창동에 온 아이들, 수학교육과 학생들, 교수님이 함께 보폭 재기를 했다. 특정 지점까지 보폭 수를 기록하고, 한 보폭을 측정해 곱하니 거리가 나왔다. 그 결과 값을 안내판 지명 밑에 적었다.

학생들은 100년이 넘은 양조장 굴뚝의 높이를 재는데 수학적인 공식을 활용해 측정하는 체험을 했다.

가정교육과는 얼굴 모양과 피부 톤에 맞는 옷 고르기를 창동 상가골목에서 실시했다. 옷가게들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중학생, 가정교육과 학생, 교수님이 함께 창동 골목의 옷가게들을 들러 학생들의 얼굴 모양과 피부 톤에 맞는 옷을 찾아보고, 의류 판매 전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골목여행 프로그램을 처음 한 학기 운영했을 때 약 50명의 학생들이 신청했다. 다음 학기에는 1,000여명이, 두 학기에 총 2,000여명의 학생이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모집이 힘들었다. 이후 몇 번 참여를 했던 학교들로부터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정원이 넘치는 인원이 신청하고 있다.

사범대 전체 학장님, 교수님, 학생들, 지역상인들, 마을활동가님들, 도시재생지원센터, 상권활성화재단 등에서 골목을 살리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여러 번 모여서 소프트웨어를 발굴했다.

소프트웨어를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상권활성화재단에 자생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달했다. 골목여행 프로그램이 시작 된지 7년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행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두 번째 사례는 창원시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시에서 사업을 지원한지 10년이 됐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들여다보니 매년 꽃길을 만들고 관리를 못해 엉망이 되는 일이 반복이 됐다.

정말 본질적으로 으뜸마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올해 사업에 선정된 8개 지역 중에서 4곳에서 우리 학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으뜸마을 추진 위원회, 주민자치위원회 등 각종 주민대표, 공무원, 경남대 전공 교수님, 학생들, 행정직원들이 함께 모여서 팀을 만들었다.

네 개 마을만들기 중 대표 사례로 교방동을 소개하겠다.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교방동에는 조선중기에 세워진 정자 관해정이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 정구 선생이 학문에 매진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던 곳이다. 도심 한 가운데 역사가 깊은 정자가 있으며 관해정 앞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또한 조선시대의 것으로 수령이 440년이 훨씬 넘었다. 또 씨름의 대부이자 이만기와 강호동의 스승인 학산 김성률 장사님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이렇게 교방동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의미가 깊은 곳이나 주민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또한, 집들이 낡아 재개발 지역으로 묶이며 많은 주택이 헐렸다. 제가 15년전에 살던 신혼집도 사라졌다. 잠깐 살았던 마을이 없어졌는데에도 마음이 헛헛하고 눈물이 나는데 50년, 60년 이상 살았던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공감이 됐다.

그래서 마을과 도시를 기억하는 법을 함께 고민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마을 기억하기 프로젝트 마을보물찾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공무원, 교육학과 교수, 일본마을만들기에 참여하셨던 교수, 교육학과 학생들, 주민들 등 40명이 모여서 이틀 동안 워크샵을 두 번 진행했다.

우리 마을과 관계가 있는 인물과 이야기들을 보물로 지정하고, 보물을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보물찾기를 소개할 마을 해설사를 양성을 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민들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리스트업 하고, 올 해 3~4가지 사업을 시작 했다. 또 5년, 10년 중장기 발전 계획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도 세웠다.

지난 6월 경남대 학생들과 교수님들, 주민들이 우리 마을을 알리기 위한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청소년대상교육을 실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마을해설사 양성 코스를 10주 동안 운영했고, 2학기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주민들, 어르신들 대상으로 주민들이 직접 마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것은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해설사가 되어 우리 마을을 직접 알리고 교육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교방동 보물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들은 지속적으로 마을 안에서 정기모임을 가지며, 마을 해설사처럼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수, 학생, 시설 등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연계하고 협력해 가도록 리빙랩 지원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상생하는 법이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리빙랩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과학기술이 들어가든 인문사회학적 지식이 들어가든 융합해 지역사회를 자연스럽게 변화시켜줄 수 있는 구조. 그것이 리빙랩의 실체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풀뿌리에서 시작된 리빙랩

프론트 러너 움직였고

성과 변화 보여주고 있다

이젠 정부가 봐 줘야 할 때

▲성지은 STEPI 연구위원이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열린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에서 "현장에선 이미 움직이고 있고 변화와 성과가 나오고 있다"라며 "이제는 정부가 봐주고 움직여주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박사 = 제10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이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다. 지금 각 분야에서 성과들이 나오고 있고 변화가 시작이 됐다. 이제는 국회에서 리빙랩 활동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은 현장에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구성원들 스스로가 이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정부 정책 등이 현장의 이야기를 끌어 올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국민생활연구 실행계획이나 과학기술기반 사회문제 해결형 종합실천계획에 리빙랩이 들어가 있지만, R&D 평가체계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제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어렵게 시작해 이만큼 이루어 낸 시스템과 성과들이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면서 왜곡되고 변질되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히 말씀 드릴 수 있다. 이것은 현장과 소수의 프론트 러너들이 등장하면서 그 성과와 변화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부분을 정부가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신들의 입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제는 리빙랩이 무엇인지 알겠다. 이제 성과가 나왔다. 지속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사람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 리빙랩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촉진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가 리빙랩 전도사였지만 이제는 이 분들을 뒤따라가면서 정리해 나가고, 이 분들이 크게 한 판을 벌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닌가 한다.

저에게는 리빙랩과 관련해 정해놓은 몇 가지 철학이 있다. 첫 번째는 리빙랩을 앞에서 끌고 가지 않겠다. 두 번째는 리빙랩을 가르치지 않겠다. 세 번째는 리빙랩이란 단어에 금지옥엽처럼 매달리지 않겠다이다.

그래서 사실 이 선생님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왔던 부분들이 너무나 감동이었고 함께 가는 것 같다.


할머니들이 인문학을 접한다면

또 어떻게 바뀔까?

◇ 김정남 위원장 = 제가 마산에서 살다가 통영으로 귀어를 한 것은 3년 전이다. 마산에 있었기 때문에 김경년 팀장님이 추진한 3.15화분도 알고 있다. 저희도 남편하고 둘이서 화분을 두 개 신청했다. 그래서 창동에 가면 내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찾게 된다. 정말 성공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정은희 센터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이렇게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창동 골목 살리기가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전에는 리빙랩을 몰랐다.

마을에 한글을 배우시는 할머니들이 저에게 “나 죽기 전에 글을 배우게 해 주는 사람”이라며 고마워하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받아주신다.

이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경로당에서 정부지원금으로 마련되는 점심을 드시고, 할머니들과 화투치고 간혹 싸우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셨다. 한글을 배우신 후에는 할머니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 번 스스로 모여 공부를 하신다.

시대와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했던 가슴에 맺혀있는 한을 이렇게 열정을 다해 풀고 계신다.

이 분들에게 인문학을 접하게 한다면 어르신들이 어떻게 변할까 또 우리 마을이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 소중한 말씀을 듣고 할머니들의 한글 교육에서 통영의 톳을 매개체로 마을을 조금 더 발전시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톳을 통해 더욱 어르신들의 교육이 더 발전 될 수 있을 것 같다.


“난생 처음 태어나서 서울로 소풍을 갔다 왔다.

너무 고맙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꼬”

▲통영 당포마을 귀어인·마산YMCA 평생교육위원회 김정남 위원장이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열린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에서 마을 할머니들께 한글을 가르치며 생긴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 사회 :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들었다.

◇ 김정남 위원장 = 최근에 경남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한 할머니께서 제게 “내가 이번에는 이름을 딱 보고 ○○○를 딱 찍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이름을 읽고 선거다운 선거를 했다는 거다.

할머니들은 버스를 탈 때 옆 사람에게 행선지를 말하며 그 곳으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어보고 타고는 했는데, 이제는 행선지를 읽고 스스로 탈 수 있게 됐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축의금을 낼 일이 있을 경우 봉투에 돈을 넣어 “이거 내꺼다 가져다 줘라”라고 옆 사람에게 시켰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당신의 이름을 써서 직접 가져다주신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도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들어야 누군지 알았는데, 이제는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을 보고 알고 받으신다.

이제는 병원이든 은행이든 어디를 가더라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당당하게 쓴다고 말씀하신다.

당신들은 “옛날에는 내가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이 살았는데, 지금은 훤하게 산다”고 하셨다.

할머니 한 분은 공부를 하시면서 “내가 죽어가지고 다시 태어나면, 고등학교까지 다닐꺼다. 우리 영감은 대학교도 나오고, 눈으로 글을 다 보고 갈 수 있으니까 오만 천지 다니면서 살았는데 나도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는데 이 분들은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살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전 항상 할머니들께 “오래 사이소, 아프지 말고 오래 사이소, 아프면 공부 못합니다. 병원 가야합니다”라고 말한다.

할머니들과 함께 한 마을에서 오래 살면서 계속 공부를 가르쳐드리려고 한다.

하루는 교과 과정 중에서 기차여행이라는 단원이 나왔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기차 다 타보셨지요?”라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 여섯 분 중에서 한 분만 “나는 우리 아들이 서울에 있어서 KTX 타고 한 번 갔다 왔다”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아...’ 하고 있는데 한 분이 “우리도 KTX 타고 서울 한 번 가보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는 “그러면 가을 소풍은 KTX 타고 서울입니다”라고 했다.

할머니들을 보내드리고 KTX를 예약하려고 보니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마을에서 통영 터미널까지 가고, 마산 남부터미널로 가서 다시 KTX 역까지 가야만 했다. 이런 여건이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지 못했겠다고 생각했다.

연세가 많으시고 다리를 수술하셔서 불편한 할머니들과 남편 총 열 분의 어르신을 모시고 하루 만에 다녀오지 못할 것 같아서 15인승 승합차를 렌트했다. 마산역까지 와서 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경복궁 투어를 했다.

그 다음 주 수업시간에 할머니가 한 분께서 편지를 써서 가져오셨다. 아직 그 할머니는 한글로 문장을 엮어서 편지를 쓸 실력이 안 된다. 그런데 A4 용지 한 장을 써오셨다.

“난생 처음 태어나서 서울로 소풍을 갔다 왔다. 너무 고맙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꼬”라고 구구절절이 쓴 편지 한 장을 읽고 어떻게 쓰셨냐고 물었다.

지난 배운 책에서 하루 종일 걸려 한 글자씩 짜깁기를 하셨다고 했다.

그 때 제가 엄청 울었다. 귀어를 해서 저에게 이런 시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할머니들하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아닌 건 아니야

할머니들의 반란

마을에서 5억 원의 정부 사업비를 가져올 수 있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도전했다. 마을 주민 중 한 분이 발표를 해야 하는데, 모두 어르신들이어서 발표를 할 분이 안계셨다.

이틀 뒤가 발표 날짜이고, 우리가 가지 않으면 2순위에 올라갔던 마을이 선정되는 아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모여서 회의 하는 곳에 갔다. “어르신 감히 말씀 드립니다. 정부에서 사업에 선정되면 5억을 준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가실 분이 안계시면 제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다녀 오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허락을 얻었다.

이틀 동안 사업계획서를 공부해서 1차와 2차를 통과 해 5억을 받았다.

그런데 사업 추진위원장님이 이 사업은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모르시고, 개인 의견과 권한으로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고 나가시려고 했다. 할머니들이 평소에 모르시니까 마을 리더 한두 분들이 끌고 나갔다.

하루는 역량강화교육 노래 교실이 있어서 참석을 했다.

추진위원장님은 “65세 이상 경로권이 있는 사람만 역량강화사업 노래교실에 참여를 할 수 있다. 앞으로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은 어촌계와 연계시켜 추진할 것이다.” “그러니 자격이 안되는 정남씨는 나가 달라”고 부녀회장이 말했다. 추진위원장과 부녀회장은 부부이다.

이 사업은 주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인데 추진위원장님은 내용을 잘못 알고 소수의 사람들로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어쨌든 노래 교실 수업은 시작을 해야 하니 제가 나가기로 했다. 그러자 저와 공부를 하고 있던 할머니들이 “우리도 나갈란다”라고 하시면서 강하게 대응하셨다.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하나라고 하면 하나인 줄 알고 가만히 있었는데, 한글을 배우신 후에 이제는 자신감들이 생기셔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신다.


▲경남대학교 지역사회혁신센터 정은희 센터장(왼쪽)과 성지은 STEPI 연구위원이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열린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에 참석해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홀로 걸어온 길

함께 걷는 장 마련하자

◇ 성지은 연구위원 = 통영의 사례를 들으며 추진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말씀을 듣고 저도 또 다른 꿈을 꾸는 것이다.

글을 모르시던 할머니들이 한글을 익히며 스터디 그룹을 스스로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대외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르신들과 다양한 구성원들이 톳을 매개로 힘을 합쳐 수익도 내고, 마을 경기도 살리는 것 또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톳과 관련된 음식 전문가, 톳을 주제로 한 스토리 작가, 톳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함께 모여 다시 한 번 도약을 시도하고 싶다.

초대하고 싶은 연구자도 있다. 화학연의 한 연구자는 평생을 톳과 파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먹거리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연구해 오셨다.

대학에는 식품영양학과, 전통요리학과 전문가들이 있고, 농진청에는 톳 짱아지와 같은 음식을 제품화하는 선생님도 계신다.

오랫동안 아토피 환자를 보아온 의사 선생님도 계신다. 아토피 질환에는 먹거리가 매우 중요한데, 톳과 같은 해조류가 우리의 몸을 깨끗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이 의사 선생님은 “나는 이제 진료실을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진료실을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다. 안내를 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한 곳은 암 생존환자들이 모인 그룹이다. 병원에선 암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암 치료 이후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 지에 대한 부분이 없다. 암 생존과 관련해 먹거리 부분에서 리빙랩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바 있다.

이제는 톳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지역의 주체와 외부의 주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다.

지금까지 김정님 위원장님 혼자 해 왔다.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모여 꿈꾸고 상상하는 만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돈 생겨 그러는 거 아냐?

비뚤어진 시선이 힘들었다


▲창원시 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활동가팀 김경년 팀장이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열린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에서 마을 활동가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 사회 =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다. 또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 김경년 팀장 : 어려움이야 늘 있었다. 시작할 때 누구의 지원도 없이 스스로 하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설친다고 욕도 많이 들었다. 사람들로부터 “돈이 생겨서 그러는 거 아냐?”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활동이 점점 알려지면서 지역 신문이나 방송사에 노출이 되니 사람들이 “지가 뭔데 텔레비전에 다 나오노”라고 비난했다.

사람들의 삐뚤게 보는 시선이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됐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주민의 참여율이었다. 상인들은 자기 점포를 항상 지켜야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은 지역 네트워크로 시작했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점은 주민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사업으로 진행을 할 경우에는 예산이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하지 않는다.

도로에 놓인 화분에 일회용 잔이나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버린다. 저에게는 버려진 담배꽁초 줍는 게 일이다. 구도심은 공공화장실이 없어 골목길에 노상방뇨를 하는 일이 예사다. 점포주들은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는다.

건물주들은 노후 건물들을 관리하지 않고, 임대료만 받는다.

땅 값이 오르니 임대료가 함께 오르고, 상인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상가가 자주 바뀌는 것도 안타깝다. 최근에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다시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심각한 문제이다.

10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진심을 알아주고 힘을 모아준다. 지나가면 “욕 본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신다.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지만 즐겁지가 않다. 본인이 즐겁지 않으니까 손님이 들어오든 말든 딴 짓하고 있다. 응대가 약하니까 손님들도 가게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한다.

주인이 친절하고 좋은 인상을 받으면 손님들도 또 그 집에 가서 사야지, 창동에 또 와야지 할 텐데, 손님이 안 오는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상인 스스로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상인 스스로 창동 내부의 고객이 되어야 하는데 해 지면 상점을 닫고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가서 먹고 즐기고 한다.

협업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다른 상점에 가면 5% 할인도 해주는 그런 공동 마케팅이 되면 참 좋은데 협업이 서로 안 된다.

“손님들이 카드 쓰고, 주차권 주고 하면 남는 게 없다”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손님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는 방법인데 안타깝다.

오늘 모습과 내일 모습이 달라야 손님이 오지, 똑같은 모습이 있으면 손님도 지겨워서 오지 않는다. 매일 신선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해야하는데 이런 점들이 부족하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서부 경남권 등에 소재한 학교의 학생들이 자율학기제를 하러 창동으로 온다. 교육청이랑 연계 되어 진행이 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문화에만 젖어있는 아이들이 구도심에 와서 골목 등을 방문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성장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어디에 가서 단팥죽을 먹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그 도시를 기억하듯이, 추억을 많이 경험해야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역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그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에 손이 가지 못한 곳이 굉장히 많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민 사업이나 마을 사업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지 않는 부분도 보듬어주어야 하는데, 자꾸 보이는 성과만 바라니까 뒷골목은 계속 낙후되는 것이다.

폼 나는 큰 사업도 좋지만 몇 백만 원 규모의 소규모 사업도 필요하다.

200만 원 정도를 주더라도 믿고 예산을 맡기고 주어야 하는데 상호간에 신뢰가 없다. 엉뚱한데 쓰는 것 아니냐고 생각이 있다 보니 사업이 건강하게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지역 주민으로서 골목을 지키고 활성화를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즐거운 일도 있다. 고향에서 외지로 나갔던 친구들이 가끔 고향을 찾아올 때면 저에게 “고향을 지켜주어서 고맙다. 창동에 네가 있어서 좋고, 네 덕분에 조금씩 창동이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게 너무 보기 좋다”고 말해준다.

내가 살아갈 동네이고 내가 일과 일상을 함께하는 동네이니까 활동하고 있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참 좋다.

‘너 혼자 하지 말고 나도 도와줄게’라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입주 작가들도 제가 와 달라 부탁을 하면 언제든 도와주고 그 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

큰 역할은 아니지만 플랫폼의 가장 밑바닥에서 힘을 받쳐주는 사람들은 현장 활동가이다.

마을 활동가가 골목 현장에서 그렇게 할 때에는 이유가 있겠지라며 인정도 해주고 그 분들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사회적 지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참여 끌어내기 가장 힘들어

유인책 ‧ 정당한 대가 필요해


▲2018년 8월 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열린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에서 경남대학교 지역사회혁신센터 정은희 센터장이 지역사회에 대한 대학의 역할로서 경남대가 추진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이민호 기자)

◇ 정은희 센터장 =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밥이나 커피를 사며 설득을 했지만 사실 이 방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맥을 활용하고 정과 눈물에 호소해 참여를 했다 하더라도 한 번 끝나고 나면 이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함께 감격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몇몇 분들은 계시다. 그러나 이것은 학내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대학 내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기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젊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열정 페이도 심각하지만, 국가가 대학에 주는 다양한 사업 중에서 대학 교수들에게도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사업들이 굉장히 많다.

LINC+사업과 같은 경우에도 많은 예산을 대학에 주고 있지만 전임교원들에게 정당한 대가인 수당이나 강의료 등은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부족하고 제한적이다.

이런 이유로 교수님들께 학생들과 대학을 위해 열정을 다해 봉사해 달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바람이 있다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과 지속해 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정당한 대가와 대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경남대에서 이 부분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 사업이 있다.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는데, 이때 연구비 사업 영역에 지역사회 연구 사업 프로젝트 영역을 별도로 구분하여 지원해 주면서 교수님들의 지역연계 참여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대학에서도 자구책을 마련하듯이 국가 정책 사업이나 대학 지원사업도 이런 부분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

또 대학이 이런 것들을 잘 하고 있는가도 평가 대상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마을에 와서 설친다…

마을 보템은 사회 환원의 길

◇ 김정남 위원장 = 통영에 올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퇴직을 하고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왔는데, 와서 보니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자진해서 발표도 가고, 할머니들 공부시킨다고 하니까 “저런 여자가 와서 마을에서 설친다”며 안 좋은 쪽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자꾸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혼자서 힘들어 하니까 남편이 아무 일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석처럼 그런 일들이 저를 끌어당긴다.

저는 35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게 된 덕분에 연금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사는 것은 걱정이 없으니 이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이 내가 사회에 환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톳을 활용한 사업의 경우도 큰돈은 아니지만 마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로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몰라서 못하고 있는데 욕을 먹어도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귀농이나 귀어를 하고 싶어도 원주민들의 텃새가 무서워서 안 간다고 한다. 텃새의 원인을 생각해 봤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가 아닌 정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한 마음이었다.

마을에 살던 분들은 ‘나는 일 밖에 모르는데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은 정부 지원 등 많은 것을 알고와서 우리 동네에서 무언가를 한다’며 곱게 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해결책은 마을 주민들에게도 정부 지원 제도 등의 혜택과 정보를 제공해서 농어촌에 오고 싶은 사람도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노인만 사는 농어촌이 아니고, 도시인들이 은퇴를 하고 와서 살고 싶고, 젊은이들도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하면 누리면서 정말 잘 살 수 있는 농어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은퇴 후 전원생활의 성공담도 만들어 어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가는 데 제가 앞장서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전원의 삶은 정말 행복하다.


당신들이 바로

리빙랩 코디네이터입니다

◇ 사회 = 코디네이터 활동과 관련한 향후 과제와 좌담회를 마무리 하는 말씀 부탁드린다.

◇ 성지은 연구위원 = 당신들은 모르지만 이 분들이 바로 리빙랩 코디네이터이다. 당신들은 지금 너무 훌륭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

리빙랩 정신이 있고, 리빙랩 활동이 있다. 리빙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빠진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전문가도 불러오는 것도 리빙랩이다. 리빙랩이 마을 만들기로 시작했지만 어느 한 지역이 성공을 하면 다른 지자체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김정남 선생님이 혼자서 가고 계시지만 뒤에는 선생님께서 부르면 리빙랩에 감동한 사람들이 다 함께 갈 수 있는 부분이 리빙랩 네트워크이다.

첫 좌담회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 있다. 저도 나댄다고 주위로부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행복해지고 싶어졌다. 저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손을 잡고 단단히 뭉쳐서 한 고비 넘기겠다는 것이 좌담회가 만들어진 계기였는데 지금 이 시간이 그 정점인 것 같다.

관련기사 : <[리빙랩 코디네이터 좌담회-1] 당신들이 바로 리빙랩 코디네이터입니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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