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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좌담회] 과학기술의 최종 사용주체와 어떻게 공동 창조활동을 할 것인가
[정책좌담회] 과학기술의 최종 사용주체와 어떻게 공동 창조활동을 할 것인가
  • 이민호 기자
  • 승인 2020.12.08 16: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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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사용자와 어떻게 코크레이션을 하게 되었는가”
◇ “최종 사용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 “최종 사용자를 어떻게 조직화 할 수 있었나”
◇ “최종 사용자와 과학기술이 만나기 위해 어떤 과제가 필요한가”

리빙랩은 개방형 혁신 2.0, 4중 나선 모델(Quadruple Helix Model), 오픈소스, 시빅해킹(Civic Hacking) 등과 함께 과학기술의 최종 사용 주체인 시민, 사용자, 현장의 참여가 강조하는 혁신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이 모델들의 특징은 과학자나 기업의 눈이 아니라 정책의 최종 수요자인 일반 국민의 눈으로 혁신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문제해결 방법론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정부나 기업 등 어느 단일 주체의 변화 움직임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제는 정부와 전문가 중심의 문제해결 활동과 현장 시민사회의 변화 노력이 함께 만나 함께하는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리빙랩은 산학연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전문성과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성을 결합시키는 모델이자 관련 주체의 개방형·참여형 협력 모델이다.

리빙랩에서는 상호작용을 통해 전문가가 현장 활동가·시민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 등의 리빙랩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장 주체 및 최종 사용자 집단과 함께 기술·제품·서비스 혁신의 고도화를 이뤄 가고 있다. 암생존자들은 암에 걸렸어도 행복하게 살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환자, 돌봄 가족, 의료진 등과 함께 고민하고 있으며, 1형당뇨 환우와 환우가족은 의사 등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제1차 정책좌담회를 통해 과학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고 어떤 전환을 이뤄내야 하는지(※관련기사: [정책좌담회] 사회적 가치 중심의 과학기술혁신 패러다임 전환을 논하다), 제2차에서는 지역혁신을 위해 과학기술과 지역이 어떻게 만날 것인지 논의한 바 있다.(※관련기사: [정책좌담회] 과학기술과 지역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혁신’이 중요해진 오늘날 1·2차에 정책좌담회에서는 과학기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지역의 역할에 대해 알아봤다면, 3차 정책좌담회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최종 사용 주체와 공동 창조활동을 이뤄낼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2020년 12월 3일 제3차 정책 좌담회에선 과학기술과 최종 사용자의 공동 창조활동을 엮어내고 있는 연구자, 기업, 활동가 세 분과 정책연구기관 연구위원 한 분을 모셨다. 이들은 각각 과학기술의 최종 사용자 주체인 현장작업자, 장애인, 암환자,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관련 주체들과의 연대·협력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일궈내고 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한 이번 좌담회에서는 각 부문에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함께하는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현장 의견을 들어보자.

3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퇴근 후 2시간에서 3회차 정책좌담회가 개최됐다. (왼쪽부터)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3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퇴근 후 2시간에서 3회차 정책좌담회가 개최됐다. (왼쪽부터)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과학기술과 최종사용주체 간의 공동 창조활동을 논하는 ‘정책 좌담회’

… 세 번째 이야기

◆ 성지은 연구위원 = 최근 개방형 혁신 2.0, 리빙랩, 시빅해킹(Civic Hacking) 등 최종 사용자의 참여가 굉장히 강조되고 있다. 오늘 과학기술과 최종 사용자가 어떻게 만날 것인지, 그리고 최종 사용자와 어떻게 공동 창조활동, 즉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을 할 것인지를 주제로 좌담회를 시작하고자 한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각자 소개를 부탁드린다.

◇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 한국에자이라는 헬스케어기업에서 기업사회혁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장에서 사회혁신을 위해 비즈니스로서 필요한 부분에 참여하고 있는데, 현장과 공감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사용자와 같이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직접 환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제 아이가 1형당뇨를 진단받게 되면서, 1형당뇨인들이 한국에서 건강관리를 하는데 너무 힘든 환경임을 알게 됐다. 이런 환경을 조금씩 바꿔 보고자 노력해오다 중간에 고발도 당하고 검찰 수사도 받아 봤다. 결국 그런 것들이 전화위복이 되어 정책도 바뀌고 1형당뇨인들이 보다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1형당뇨인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의료기기를 통해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의료정책에도 참여하고 있다.

◇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 연구를 30여년 해오면서 그동안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다면, 2015년부터 리빙랩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사회문제해결의 사회격차 해소’라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최종 사용자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리빙랩 개념을 모든 연구과제에 도입하면서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접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로 어떻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최종 사용자와 어떻게 코크리에이션을 하게 되었는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성지은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질문을 던지고 있는 성지은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 오늘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다. 서정주 부장은 기업의 사회적 활동과 비즈니스 활동으로서의 리빙랩을 하고 있고, 김미영 대표는 최종 사용자 주체인 환우회 대표로 리빙랩 활동을 하고 있다. 성태현 교수는 과학자 대표로 이 자리에 오셨다.

과학기술이 최종 사용자하고 어떻게 ‘코크리에이션’ 할 것인지 얘기해보자.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코크리에이션과 무엇을 위해 함께 했는지 얘기해본다면.


◇ “혼자였다면 몇 달이 걸려도 하지 못해… 다 같이 하면 한두 번 논의로 디자인 가능”

서정주 =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이라는 말도 쓰지만, ‘코프로덕션(Co-production)’이라는 말도 있다. 두 개 명확한 차이는 해석하는 분들의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사용자가 만들어가는 것을 코크리에이션이라고 본다면, 저는 사용 서비스의 끝단까지 같이 가는 것을 코프로덕션이라 본다.

저희는 ‘온랩’ 이라는 암 생존자 리빙랩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법인화 행정 작업 중에 있다. 어떤 변화가 있어야 암 경험자들이 사회 복귀를 잘 할 수 있고 또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제안활동과 서비스에 대한 디자인 등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그중에 암 경험자 사회 복귀 지원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을 같이 디자인해 봤다.

“어떤 것들이 필요하냐?” 라고 했을 때, 사용자도 있지만 거기에는 의료전문가도 있고, 심리치료사 선생님도 계신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해야 하는 공간, 사용자 니즈 등 이런 것들이 한자리에서 이야기되고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게 가능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저 혼자 기획해서 추진했다면, 혼자 방 안에서 기획을 하고 또 사용자한테 의견을 물어보고 또 전문가한테 의견을 물어보고 또 예산을 찾아보고 하느라 아마 몇 달이 걸려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자리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얘기하다 보면 한 두 번의 논의로 프로그램이 디자인됐다. 처음에 생각할 땐, 너무 복잡하고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 디자인, 환경, 자원 등을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논의할 수 있어 기술 구현 가능성을 비롯해 굉장히 빨리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사진=이민호 기자)
최종 사용자와 어떻게 코크리에이션 하게 됐는지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사진=이민호 기자)


◇ “해외 선진 커뮤니티는 소통을 넘어 시빅해킹 하는 중… 최종 사용자 니즈 반영돼야”

김미영 = 처음에는 당뇨라는 질환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아이 때문에 당뇨라는 질환을 알게 됐다. 국내의 환자관리 환경이 열악해 해외를 조사해 보니 ‘Nightscout(나이트 스카웃)’이라는 환자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 ‘Nightscout’은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시빅해킹을 하고 있었다.

의료기기 회사는 하드웨어를 만들지만 정작 저희가 필요한 소프트웨어적인 기능은 만들지 않는다. 왜냐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회사가 관리하기 쉬운 형태의 단순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 때문이다. 저희는 데이터를 활용해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은 니즈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글로벌 1형당뇨 커뮤니티인 ‘Nightscout’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저는 한국 대표로 처음 Nightscout에 참여했고 Nightscout의 개발 상황을 한국에 있는 1형당뇨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보통 환자라고 하면, 굉장히 수동적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데이터를 활용하고 정책을 바꿀 수 있는지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했다. 제가 처음 활동했을 땐, 환자와 최종 사용자에 관련해 얘기하면 대부분 구색 맞추는 용도로 받아들이거나 제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에는 1형당뇨에 관련한 환자 중심의 개발이 커머셜한 영역을 리드하고 있다. 실제로 커머셜 인공췌장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 CEO가 Nightscout에서 개발한 것을 많이 참고한다고 미국 다큐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것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가고자 노력한다.

저희 슬로건은 ‘We Are Not Waiting’이다. 정부, 업체, 의료진이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 해 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해 좀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전에는 글로벌 Nightscout에 도움을 받았지만, 최근 국내에도 정책 등 많은 것들이 변화하면서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저희를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사진=이민호 기자)
최종 사용주체와 어떻게 코크리레이션 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사진=이민호 기자)


◇ “최종 사용자와 소통 없으면 최적화된 상품 만들 수 없어”

성태현 = 최종 사용자와 같이 하면서 알게 된 것을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저희가 했던 안전의복장치가 있다. 야간 작업자를 위한 안전의복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빛이 밝을수록 좋다고 생각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빛을 작은 전력을 이용해 밝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실제 접합해 보니 그 밝은 빛은 작업에 방해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최종 수요자와 코크리에이션이 없었다면 가장 최적화된 좋은 상품을 개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최종 수요자의 의견이 다양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정확한 답을 찾아가는 것도 코크리에이션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 예로, 최근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업을 하게 되어 시각장애인협회 연합회를 찾아갔는데 그분들의 얘기가 우리를 위해 많은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알지만, 실상 만들어진 것을 써보면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 사용자들이 참여하지 않아서 일어난 부작용이다. 연구비와 많은 인력의 에너지가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는 거다. 이제는 최종 사용자와 연구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사진=이민호 기자)
최종 사용주체와 어떻게 코크리레이션 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사진=이민호 기자)


“최종 사용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 성지은 = 구체적으로 최종 사용자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출자”를 리빙랩에서는 ‘코크리에이션’라고 표현한다. 최종 사용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뛰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최종 사용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얘기해 본다면.


◇ "최종 사용자의 다양한 수요가 존재, 다만 정보 공개 등 법제도적으로 보완돼야”

서정주 = 암 생존자의 리빙랩을 하고 있는 ‘온랩’에서는 ‘온랩데이’를 정해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한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만나는데, 최근 회의에서는 1시간 짧게 하자고 했다가 2시간이 넘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은 끝단에 있는 한 사용자께서 임상 정보를 알고 싶다는 데서 시작됐다.

암 환자의 경우 표준 치료가 다 끝나고 의사들이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을 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찾아보다가 신약에 대해 알아보게 되고 신약 임상을 희망하게 된다. 신약 임상은 국가마다 정책이 다르다. 임상 정보가 환자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국가도 있고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는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편인데, 임상 정보를 공개했을 때 오해나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환자들은 알 권리가 있다. 환자들이 알고 싶어도 정보가 전문가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환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온랩 회의 때, 한 최종 사용자께서 이런 것들을 환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보 지도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었다. 치료를 좀 더 시도해볼 수 있도록,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도를 원했던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공급자도 있었다. 국내 상황은 해외와 달라 법적으로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사용자의 니즈와 현장의 현실을 확인하며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서정주 부장(왼쪽)과 경청하고 있는 성지은 박사(오른쪽). (사진=이민호 기자)
서정주 부장(왼쪽)과 경청하고 있는 성지은 박사(오른쪽). (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 방금 말씀하셨던 최종 사용자의 수요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왜 이제야 그런 수요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암에 걸렸다면 나을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기술은 어디까지인지, 임상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 게 당연할 텐데.

◇ 서정주 = “담당 의사와 상의하세요” 이게 전부다. 물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의사도 있겠지만 보통 우리나라 진료 환경에서 짧은 진료 시간에 자세히 알려주기는 어렵다.

◇ “최종 사용자인 환자는 아이디어가 많을 수밖에… PPRN 형태의 의료데이터플랫폼 구축 중”

김미영 = 똑똑한 사람도 환자가 되면 아기처럼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잘못된 정보도 있겠지만, 환자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조사해 의료진에게 얘기하면 진료시간이 길어지고, 환자가 많이 알면 상담이 힘들어진다는 것들이 팽배했다. 저도 아이가 진단받았을 때 정보를 찾아 의료진에게 물어보면 그건 틀린 정보라며 방어적인 태도가 대다수였다.

최종 사용자들은 아이디어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왜 얘기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는 질환에 갇혀 있어서 질환을 관리하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또 질환을 오픈했을 때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저희도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이 상황이 어색한데, 불과 1년 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환자군이며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듯이 결국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약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일할 수 있고 역할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는 저희 환우회에게 질병이 있어도 건강한 사람으로 우리 스스로를 보여주는 것이 인식 개선에 첫 단계이고, 우리가 그 틀을 깨자고 얘기한다.

최종 사용자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자면, 저희는 의료기기에 있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해킹해 저희만의 어플리케이션을 만든다. ‘DIY 프로젝트’를 통해 오픈소스로 최종 사용자인 환자 자신이 원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그것들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용에 그쳤지만, 사용하다 보면 굉장히 많은 의료데이터나 라이프로그 데이터가 수집된다. 예를 들어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고 있으면 하루 288개 혈당 정보와 인슐린 주입 정보, 음식 정보 등이 들어온다. 이처럼 환자들이 모으는 의료데이터를 가지고 연구에도 활용하고 임상에도 활용할 수 있지만, 의료계와 연결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저희는 외국 PPRN(Patient Powered Research Network)을 모델로 파편화되어 있는 각각의 개인의료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작업을 했고, 지금은 환자 개개인들이 각각 구축했던 DB를 PPRN 형태의 공공데이터 플랫폼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진입 장벽은 아직은 높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환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어 의료데이터가 공공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 또 이런 것들이 디지털헬스케어나 다른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최종 사용자들과 만들고 있다.


◇ “최종 사용자는 많은 변모를 갖고 있어… 꾸준한 소통이 신뢰의 바탕”

성태현 = 최종 사용자의 역할은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다. 처음에는 ‘문제제공자’가 되고 개발할 때는 ‘공동 개발자’가 되고 시제품을 실험할 때는 ‘평가자’가 되며 활용이 될 때는 ‘채택자’가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최종 사용자(소비자)’가 되는 5가지 단계의 역할이 변화하게 된다. 최종 사용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지만,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모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최종 수용자에게 기술에 대해 소개할 필요가 있고, 최종 사용자도 다시금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저희 에너지 하베스팅을 예로 들자면, 재귀반사 테이프를 붙여 자동차 라이트로 반사돼 보이는데, 자동차가 오지 않으면 작업자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LED램프가 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이 나오지만 배터리는 방전되니 자꾸 바꿔줘야 하고 또 구매하는 불편함이 있다. 저희가 찾아가면서 이 사람들은 에너지 하베스터를 알게 되고, 내 생활 영역에서 이런 기술이 들어올 수 있구나를 알게 된다.

이렇듯, 처음 최종 사용자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에는 연구자를 만나면서 연구자 기술을 배우는 학생 입장이 된다. 잘 습득할 수 있는 학생 입장이 되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올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사용자가 되고 평가자가 된다. 이들이 평가자가 되면 굉장히 냉철하게 평가한다. 어떤 때는 듣기 힘들 정도로 평가하는데 그것을 잘 수용하고 그 다음을 넘어가면 굉장히 좋게 평가해 주기도 한다.

최종 수요자는 여러 단계로 변모한다. 문제 제기자가 되기도 하고, 또 학습자가 되기도, 평가자가 되기도, 어떨 때는 실제 사용하면서 평가도 하지만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최종 사용자의 변모는 꾸준한 소통을 통한 신뢰 관계가 이뤄지면서 진행된다.

성태현 교수.
최종 사용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에 답변하고 있는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사진=이민호 기자)


“최종 사용자를 어떻게 조직화 할 수 있었나”

◆ 성지은 = 성태현 교수가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핵심은 최종 사용자에게 신뢰를 얻고 협력을 해야 하는데, 최종 수요자들을 어떻게 조직화했는지 궁금하다.


◇ “서로의 ‘공감’과 ‘신뢰’가 중요…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서정주 =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제 경우는 암 경험자와 활동하는 그룹도 있지만 이외에도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을 최종 사용자로 볼 수 있고,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 “공공적 마인드를 가진 조직화된 사용자 그룹”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희는 그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꾸준히 모였고 앞으로는 두 번씩 모여야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제 생각에는 신뢰와 협력을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

노나카 이쿠지로라는 지식창조이론을 소개한 학자가 있다. 그는 공감의 중요성을 얘기하는데, 상대의 감정과 무엇을 걱정하고 우려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신뢰가 생길 수 없고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나의 어려움을 얘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해 관계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최종 사용자들도 공부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랑 관련된 기술은 무엇인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주민의식 제고, 민주적 역량 강화 등의 교육도 필요하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떤 도구를 가지고 치매 어르신들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어르신께선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색칠 공부를 시키냐고 화를 내셨다. 또 어떤 어르신은 평생 미술을 한 적도 없는데, 치매 걸리니까 미술하냐는 식으로 반응을 보이신 분도 있다. 개인별로 필요한 니즈가 달라 접근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은 학교 커리큘럼처럼 다 똑같이 하니 어떤 분에게는 너무 안 맞기도 한다. 개인별로 맞춤화된 사람 중심의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서정주 부장.
최종 사용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는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다양한 최종 사용자 주체가 나오고 있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치매환자, 장애인 등 서정주 부장님께서 다양한 주체를 말씀하고 계신다. 최종 사용자를 한 번 나열해 줄 수 있는지.

◇ “환자, 장애인, 노인이 최종 사용자 주체로 활동 중”

서정주 = 장애인분들도 비장애인에 대해 오해가 있고, 비장애인들도 장애인에 대해 오해가 있다. 인구 5%는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주변에 장애인이 잘 안 보이는 이유는 나오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이다. 또 5% 장애인 중 90%는 태어날 땐 장애가 없다가 중간에 장애를 입었다. 그런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뭐가 불편한지, 공정한 것은 무엇이고 부의 재분배라던가 모두를 위한 합리적 배려는 무엇인지, 사회가 어디까지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됐다. 얼마 전 회사에 장애가 있는 직원이 생산자의 입장으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했다.어느 때보다도 실감나고 몰입되는 교육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때 저는 이분들한테 맞는 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이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고령화에 따라 노령층도 다양하게 계신다. 60대부터 90대까지 이분들이 장수사회에서 사회에 어떻게 참여를 하고 가야 하는지, 필요한 물건이나 도시환경은 어떨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또한, 질병이 있어도 미안해하거나 약자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요즘 ‘질병권’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아프지만 흔들리면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분들, 노인 외에도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분들이 많은데, 이러한 다양한 주체들과 같이 소통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


◆ 성지은 = 그분들이 시작은 했지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는 게 중요하다. 성태현 교수와 김미영 대표는 이러한 것을 어떻게 하고 있고, 또 어떻게 조직화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최종 사용자 조직화 비결은 ‘성실한 메인테이너’”

김미영 = 저도 처음엔 직장을 다녔고 아이도 어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제 아이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조직화하는 것은 쉬운 편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정체되어 있는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는데, 커뮤니티 운영자는 조용하게 운영하기를 원했다. 저는 빨리 바뀌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던 지라 저와 맞진 않았다.

저희가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면서 이를 계기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새로운 커뮤니티는 그때 당시 예전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분들이 우리 쪽 새로운 커뮤니티로 이동했다. 처음 500명으로 시작해 5년이 지나면서 6500명으로 늘었다. 500명으로 처음 둥지를 트고 거기서 정말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의료기기도 도입하고 정책도 바꾸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과거에 저는 아이를 얘기하면 눈물이 먼저 나왔었다. 하지만 그런 분들과 얘기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나가다보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희 질환은 완치가 어렵지만, 잘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질환이다. 질환별로 특징이 있는데, 중증질환의 경우는 굉장히 힘든 치료 기간이 있지만 완치가 가능하며, 완치가 끝나면 환자단체에 소속감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저희 단체는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질병이라, 변화를 경험해 보면 잘 안 나가게 된다. 저희는 전국에 지역 대표님이 계신다. 이 분들은 지역에서 힘드신 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신데,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받았던 도움에 대해 함께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셨다. 이렇듯, 질환별 특징과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됐다.

카이스트의 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히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이는 저희 환우회에 딱 맞는 예기다. 저희 단체에는 성실한 메인테이너가 참 많다. 그분들이 제가 어떤 대표적인 활동을 하면 굉장히 잘 지원해 주고 의사결정을 할 때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이뤄 낼 수 있었고 그 변화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미영 대표.
최종 수요자의 조직화를 위한 동기부여 경험을 설명하고 있는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 김미영 대표를 뵈면서 놀라는 게 1형당뇨환우회에게도 신뢰를 얻지만, 저희와도 같이 일하면서 신뢰를 얻어간다. 메인테이너를 말씀하셨는데 김 대표님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 김 대표가 하는 일을 많은 타 환우단체도 보고 있는데, 일종의 패턴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지치지 않고 끝까지 훨훨 날았으면 한다. 이어, 성태현 교수님도 말씀 부탁드린다.


◇ “신뢰의 핵심은 ‘공감’… 최종 사용자에 공감을 얻기 위한 꾸준한 노력 있어야”

성태현 = 리빙랩은 아마 2015년 STEPI 성지은 박사와 송위진 박사가 시작했는데, 꾸준함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언제라도 리빙랩 개념이 없어질 수 있었지만, 꾸준함이 있었기에 지금 전국적으로 리빙랩 얘기가 들려온다. 성 박사와 송 박사가 아니었으면, 저는 그냥 제 연구만 하고 끝났을 것 같다.

최종 사용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이것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리빙랩 방법을 활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최종 사용자들의 공감이 필요하다. 저는 공감을 얻기 위해 서울시청 청소과, 성동구 청소계와 팀장 그리고 환경미화원을 만나기까지 단계별로 상황 파악을 했다. 어렵게 처음 만난 환경미화원들은 “왜 바쁜데 왜 이러냐?” “왜 당신들의 연구에 왜 나를 이용하느냐?” 등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꾸준한 소통, 꾸준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종 사용자들이 “아! 이 사람들과 하면 뭔가 결과가 나오겠구나, 내가 도와 줄 필요가 있구나” 이러한 동기부여를 끌어낼 때까지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마음이 뒷받침돼야 공감의 리빙랩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의 첫 발을 내디딜 수가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사회문제 해결이나 리빙랩을 볼 때, 부모 마음으로 자녀를 보듯 끝까지 이해하고 그를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연구를 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잠시 이용해보자는 그런 얄팍한 마음이라면 아마 진정한 리빙랩 결과는 어려울 것이다.

◆ 성지은 = 성태현 교수는 시각장애인과의 리빙랩도 하고 있는데, 그분들과는 어떻게 신뢰를 쌓아 가는지.

◇ “리빙랩의 핵심은 ‘공감’… 최종 사용자 동기부여는 ‘빠른 피드백’이 중요”

성태현 = 시각장애인과는 아직 초창기지만, 그분들도 저희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찾아가면서 먼저 두드렸다.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냐”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왔다가 없어질 것이다”, “이런 거 많이 해봤지만, 도움이 하나도 안 되더라”, “국가과제로 많이 하더라” 등 부정적 시선으로 시작됐다. 사실 저희는 순수하게 사회격차 해소, 사회문제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

최종 사용자의 동기부여는 빠른 피드백이라 생각한다. 문제가 제기되고 빠른 피드백을 갖다 주면 “어? 이거 뭐야? 다른 연구자와 다르네”, “자꾸 나를 찾아 오네” 이런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한다. 시각장애인이 어떤 면에선 야간작업자보나 좀 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 시각장애인들은 처음에 같이 설계하고 다음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우리가 가장 빨랐다고 했다. 이후에는 직접 얘기를 해주면서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리빙랩은 디자인씽킹 방법도 채용되는데 그때 첫 번째 ‘공감이 들어간다. 공감의 부분이 리빙랩에 핵심이다. 수용자, 연구자, 관계자들과의 전체적인 공감을 이루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여기에는 어떠한 에너지를 투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마음껏 투자해도 지난번보다 더 가치 있는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용역으로 할 것도 아니고 직접 연구자가 부딪치며 에너지를 써봐야 한다.

◆ 성지은 = 시각장애인과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 “답도 최종 사용자에 있고, 문제도 최종 사용자에 있다”

성태현 = 시각장애인들은 흰색 지팡이를 갖고 계신다. 지팡이는 부딪쳐야 물체가 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저희는 3~5m가 되더라도 앞에 물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지팡이에 센서를 달고, 또 시각장애인이 어디에 있던지 GPS를 달아서 보호자나 가족들이 알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부착했다. 이것을 가지고 CES2020 미국 전자 박람회에서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받게 됐다. 여기에 기능을 더 보강해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도 받았다. 또 보강해서 미국 2020 IDEA 대상에서 파이널리스트 상도 받았다. 상을 받은 건 좋지만, 이게 실제 적용이 안 된다면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리빙랩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만나면서 제가 마음속으로 반성했던 것이 있다. 저희는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놓치게 되면 핸드폰으로 부저가 울려 주변 사람들이 지팡이를 찾아줄 수 있도록 설계했었다. 그런데 직접 시각장애인한테 찾아가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수도 없이 지팡이를 떨어트렸지만 주워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이 얘기를 직접 듣고 굉장히 많은 반성을 했다. 그래서 핸드폰에 지팡이를 말하면, 지팡이에서 소리와 진동이 나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또 하나는 지팡이 길이가 각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 각 사람에게 맞춤형의 지팡이 없다. 겨우 몸에 맞춘 지팡이를 찾았다 하더라도 쓰다보면 지팡이 고무가 3센치 이상 닳기 때문에 몸을 지팡이에 맞추게 되어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허리 아픈 사람이 많다. 그래서 지팡이에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길이가 조절되도록 하는 기술을 넣게 됐다. 이러한 기술은 시각장애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답은 최종 사용자에게 있고, 문제도 최종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다. 제가 리빙랩을 몰랐다면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지 않았을 거고, 아이디어가 있어 실제 상품이 나왔더라도 그분들이 사용할 수 없었을 것 같다.

◆ 성지은 = 흰색 지팡이에는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가?

성태현 교수.
리빙랩으로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팡이를 설명하고 있는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사진=이민호 기자)

◇ “지팡이에 여러 가지 기술이 들어갔지만, 아직 시각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은 없어”

성태현 = 여러 기술이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에너지 하베스트로 평생 배터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그분들의 요구가 너무 많았다. 그 중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쉽게 쓰지만 시각장애인용은 없다. 그래서 지팡이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내비게이션 기능을 지팡이에 넣고 싶은데, 이것을 티맵이나 카카오맵 등 내비를 잘 만드는 회사와 연결될 수 있다면 저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여기서 시각장애인은 왜 안 될까? 시장이 적기 때문이다. 시장이 적어 비즈니스 모델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안타까운 소식은 시각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보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90%나 된다.

점점 증가하는 시각장애인의 요구는 지팡이를 항상 갖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벼울 것, 짧을 것 딱 두 가지다. 이 두 가지의 짧은 요구에 필요한 많은 기능을 넣어야 하는 것이 연구자의 숙제이다.

◆ 성지은 = 성태현 교수님은 꼭 성공하리라 본다. 성 교수님께서 야간 작업자 안전에 대해 연구 했을 때, 원래 있던 안전의복보다 하베스트 기술이 들어간 게 더 가벼웠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분이고 아까 가볍고 짧은 지팡이를 얘기했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본다.



“최종 사용자와 과학기술이 만나기 위해 어떤 과제가 필요한가”

◆ 성지은 = 과학기술이 최종 사용자와 만나는 것은 지금까지는 많이 안 해 봤다. 그런데 과학기술자의 꿈은 과학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보다 이익이 되게 하는 거다. 중요한 것은 최종 사용자와 과학기술은 만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종 사용자와 과학기술이 만나려면 어떤 과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과학기술과 최종사용주체 간의 공동 창조활동을 논하는 ‘3회차 정책 좌담회’ 현장. (왼쪽부터)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 “기술매칭 정보 서비스와 경제효과 연구를 의뢰할 수 있는 프로젝트 필요”

서정주 = 과제보단 개인적인 바람을 얘기해본다면, 저희 직원들은 ‘hhc활동’으로 매년 1%의 시간을 현장을 공감하는 데 쓰기 위해서 계획서를 작성한다. 오늘 여기 오기 전에 계획서를 보다가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성태현 교수에게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처럼, 어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어디서 기술을 찾을 수 있을지 기술이 매칭될 수 있는 정보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 그런 기술이나 솔루션이 나왔을 때 이것이 정책화되려면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가 돼야 하는데, 이것을 사용자가 직접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암 경험자가 사회에 복귀할 때 복귀율이 높아지면 경제적·사회적 효과가 얼마나 나타나는지 이런 것들을 연구해줬으면 좋겠다. 연구를 신청하면 연구결과를 받을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 “환자 중심의 의료데이터 플랫폼 개발 중… ‘빠른 피드백’은 환자들도 원해”

김미영 = 1형당뇨는 만성질환이고 자가 관리가 중요한 질환이다. 의료진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의료진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3개월에 3분 정도밖에 안 된다. 결국 3개월에 3분을 뺀 나머지 시간은 본인 환자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환자도 공부해야 하고 스마트해져야 하기 때문에 환자중심으로 이끌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요즘 의료계도 핫 키워드가 ‘환자중심’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환장중심’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다. 리빙랩은 최종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 정책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리빙랩을 벗어나 의료계에 가보면 최종 사용자 중심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PPRN을 환자중심으로 만들고자 한다. PPRN에 들어오면 업체이던 정부 정책이던 모든 것들을 여기서 연구할 수 있는, 또 임상에도 도움이 되는 플랫폼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 임상결과는 좋은데 실제 약을 투약하거나 의료기기를 착용하면 임상만큼 결과가 안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임상실험을 할 때 정형화된 틀에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으로 환자를 선정하여 연구를 하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저희가 계획하는 플랫폼에는 환자들의 실생활 데이타가 수집되기 때문에 임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성태현 교수가 말씀하셨던 “빠른 피드백”은 환자들도 굉장히 원한다. 임상에 참여하는 분들은 질환을 고치려는 마음도 있지만 향후 미래에는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선한 마음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임상이 끝나면 환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있고 어떤 약을 개발하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없었다. 이러한 피드백이 자주 와야 임상도 참여하고 데이터도 기꺼이 기부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연구나 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환자중심의 의료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획하고 있다.


◇ “융합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학문이 모여 새로운 눈을 떠야”

성태현 = 앞서 김미영 대표가 말한 PPRN(Patient Powered Research Network) 좋다. 여기에 의료진들도 많이 참여해서 의사들의 문화를 환자중심으로 바꿔 가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저는 연구자로서 융합을 좋아한다. 재료공학박사로 한전에서 기계관련 연구를 13년 반 정도 했고 전기공학 교수를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이걸 떠나 야간 작업자의 의류전문가와 일을 하게 되고 나아가 정책을 위한 행정전문가와도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나름의 융합을 해왔다. 이제 실험이 끝나고 IRB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도 참여했다면 통계학적으로 좋은 IRB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굉장히 아쉬웠다.

융합의 시대가 오고 있다. 좋은 과학자도 홀로 설 수 없듯이 학문적 벽들을 무너뜨리고 이제는 함께 가야한다. 사회문제도 한 분야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양한 학문이 함께 모여 융합해야 새로운 눈이 떠질 수 있다. 과학자들이 자기 분야에만 있다가 다른 분야로 볼 수 있는 눈이 떠지게 되면,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한테는 얼마나 보배가 되고 다른 사람 것이 나에게 얼마만큼 보배로운지 서로 알 수 있게 된다.


정책좌담회를 마치며…

성지은 박사.
좌담회 클로징 멘트를 하고 있는 성지은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사진=이민호 기자)

◆ 성지은 = 이 자리에 모신 세 분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패턴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굉장히 기대된다.

오늘 우리는 과학기술과 최종 사용자가 어떻게 만날 것인지 얘기를 나눠 봤다. 최종 사용자는 파헤쳐 볼수록 굉장히 다양하다. 어르신들도 연령대에 따라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지, 또 자존감을 키워나가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양한 과제가 보인다. 들어가 보면, 수요 맞춤형이라는 말 자체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에는 돌봄경제, 순환경제, 공유경제 등 우리 사회 영역별로 어떻게 활기차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를 가지고 정책좌담회로 이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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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맘 2020-12-09 11:07:08
좌담회 내용이 참 훌륭하고 좋은 내용이 가득하네요. 기사로 내주신 기자님 감사합니다.
한국 1형 당뇨병 환우회 대표님이신 김미영 대표님! 성실한 메인테이너로서 1형 당뇨병 환우들을 위해 늘 고민하고 애써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